예천 김대기가옥에서 만난 흐린 아침 고택의 담백한 울림
지난주 흐린 아침, 예천 용문면의 김대기가옥을 찾았습니다. 고택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흙담을 따라 늘어선 기와지붕이 차분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전통 건축의 결을 가까이에서 느껴보고 싶어 일부러 혼자 방문했습니다. 공기가 차가웠지만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특유의 나무 향이 퍼지며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오래된 대문을 밀자 ‘끼익’ 하는 소리가 울렸고, 그 안쪽으로 여러 채의 안채와 사랑채가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살고 있는 듯 정갈하게 정리된 마당에는 국화와 감나무가 어우러져 있었고, 그늘진 처마 밑의 온기마저 느껴졌습니다. 오래된 집이지만 세월의 흔적 속에서도 사람의 손길이 남아 있었습니다. 조용히 둘러보며 숨을 고르는 동안, 이곳이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한 시대의 생활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임을 느꼈습니다.
1. 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진입길
김대기가옥은 용문면 청룡리 마을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면 용문사 방향으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를 따라가다 왼편 골목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마을 입구에 ‘김대기가옥’이라 새겨진 작은 돌비석이 세워져 있어 길 찾기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주차 공간은 가옥에서 약 100m 떨어진 마을회관 옆에 마련되어 있었고, 안내 표지판이 있어 편리했습니다. 차량 접근은 가능하지만 골목이 좁아 교행은 조심해야 했습니다. 마을 자체가 조용하고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걸어서 이동해도 무리가 없었습니다. 대문 앞까지는 흙길이 이어지는데, 비가 온 뒤에는 살짝 미끄러워 운동화를 신는 게 좋겠습니다. 작은 다리를 건너 대문으로 향하는 길가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그늘 아래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2. 고택의 구조와 내부 동선
대문을 지나면 마당이 정면으로 넓게 펼쳐지고, 오른쪽으로 사랑채, 왼쪽으로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구조가 사방으로 트여 있어 바람이 잘 통했고, 처마 끝에는 빗물이 고이지 않게 설계된 고전적인 곡선이 돋보였습니다. 안채의 대청마루는 닳은 나무 결이 부드럽게 반들거렸고, 기둥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방바닥에 반사되어 따스했습니다. 내부는 일반 공개 공간과 보존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일부 방 안에는 전통 생활도구가 진열되어 있어 당시의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벽에는 조선 후기의 목공예 기법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문살 사이의 세밀한 무늬가 아름다웠습니다. 직원분이 조용히 안내를 해주셨는데, 건물의 동선이 음양의 조화를 고려해 설계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각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걷는 동안 리듬감이 느껴졌습니다.
3. 세대를 이어온 가문의 흔적
김대기가옥은 예천 지역의 대표적인 사대부 가옥으로, 19세기 중엽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건물 곳곳에는 가문의 상징 문양이 남아 있었고, 사랑채에는 김대기 선생의 유품 일부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안채의 서까래에는 당대 목수의 이름이 새겨진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더욱 느껴졌습니다. 벽장 안에는 오래된 필통과 서책 복제본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를 통해 학문과 가풍을 중시했던 집안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고택들에 비해 공간의 여유가 넓고 구조가 정연하여, 실제로 거주하던 사람들의 생활감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이 집은 단순히 보존된 건물이 아니라,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맞는 ‘살아 있는 문화재’라는 점이 특별했습니다.
4. 작은 디테일이 만든 편안함
가옥 안에는 방문객을 위한 간단한 쉼터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루 끝자락에 앉으면 마당을 가로지르는 바람이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고, 담 너머로는 대숲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안내문 옆에는 전통 차를 무료로 제공하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는데, 따뜻한 유자차 향이 은근하게 퍼졌습니다. 화장실은 신축된 별채에 설치되어 있었고, 외형은 전통 담장과 어울리게 꾸며져 이질감이 없었습니다. 벤치 근처에는 충전용 콘센트가 숨겨져 있어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습니다. 계절마다 마당 한켠에 국화나 매화가 피어, 방문 시기마다 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작고 조용한 공간이지만, 오래된 구조와 현대적인 편의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5. 함께 둘러보면 좋은 근처 명소
김대기가옥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용문사와 예천온천이 있습니다. 용문사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로 유명한 사찰로, 가을이면 노란 잎이 마당을 가득 덮습니다. 가옥 관람을 마친 뒤 용문사 산책로를 걷다 보면 절집의 고요함이 자연스레 이어져 하루 일정이 완성됩니다. 점심은 인근 ‘용문한우마을’에서 한우불고기를 먹었는데, 숯불 향이 진하게 배어 있었습니다. 또한 조금 더 이동하면 예천군청 근처의 ‘예천곤충생태원’도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추천할 만합니다. 고택의 전통미와 자연, 음식이 모두 가까이 있어 하루 코스로 알차게 구성하기 좋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팁
김대기가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되며,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관람료는 없고, 단체 방문 시에는 미리 전화 예약을 해야 합니다. 입구에는 간단한 안내 브로슈어가 비치되어 있어 동선 파악이 편리합니다. 방문 시에는 슬리퍼나 하이힐보다 바닥이 평평한 신발을 권장합니다. 촬영은 가능하지만, 내부 유품은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름철에는 모기약을 챙기면 좋고, 겨울에는 마루가 차가우므로 두꺼운 양말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말 오전 시간대는 비교적 한적하고, 오후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늘어 조용한 감상을 원한다면 오전 방문이 적당합니다. 날씨가 흐린 날에는 고택의 고요함이 더욱 돋보이므로, 비 예보가 있는 날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입니다.
마무리
김대기가옥은 화려한 장식보다 실용과 품격이 조화를 이룬 공간이었습니다. 오래된 기와의 질감, 툇마루의 온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흔적이 조용히 다가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보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나무의 온도가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예천을 여행한다면 이곳을 꼭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다음에는 봄꽃이 피는 시기에 다시 찾아, 다른 계절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전통과 일상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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